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니 데이 서비스 (문단 편집) == 상세 == [[릿쿄대학교]] 법학부 재학중이던 소카베 케이이치를 중심으로 결성되었고 본래는 퍼커션과 키보드 멤버가 있는 5인조 체제였다. 그러나 94년 메이저 데뷔 후 얼마 가지 않아 모종의 사유로 퍼커션 카타야마 노리오와 키보드 코타마 키요시가 하차하고 3인조로 재편되었다. 앨범을 발매하는 본격적인 활동 가도에 들어서게 된다. 이른바 시모키타자와 흐름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쿠루리]]와 함께 일본 록을 발전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시모키타자와]]에서는 쿠루리와 함께 일종의 [[본좌]]급 대접을 받고 있다. 초창기에는 [[펑크 록]]이나 [[개러지 록]]을 지향하는 밴드였으나[* 라이브 버전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점차 [[핫피 엔도]] 풍의 어쿠스틱 주력의 [[포크 록]]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색채를 띄게 되었다. 그렇다고 마냥 포크 록만을 고집하는건 아니고 기존 개러지적인 요소라던지 [[시티 팝]], [[시부야계]], 매드체스터 및 애시드 등을 고루 수용하여 시대의 너울에 적응하는 유연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2000년, 드러머 마루야마의 참여 비중이 줄어감에 따른 갈등의 전초가 보이자 미련없이 밴드 해산을 결정하며 휴지기에 돌입하게 되었다. 2008년 재결성하기까진 중추 소카베는 사이드 활동을 이어갔는데, '소카베 에이이치 밴드'라는 프로젝트성 밴드도 지휘하며 서니 데이 서비스 못지 않은 평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휴지기동안 마냥 사이드로만 활동하는 밴드로 남아버린 게 아니라 본업 서니 데이 서비스로 복귀한 뒤로도 활동을 이어나가던 점을 보아선 또다른 본진으로 굳은 듯 하다. 허나 1990년대 시모키타자와 계열 밴드 중에서는 ([[쿠루리]], [[스핏츠]], [[미스터 칠드런]]) 한국 인지도가 가장 낮은 편이다. 저 셋과 달리 일본 내에서도 미묘하게 중박급이였고[* 의외로 앨범 차트 성적은 최고 7위일 정도로 제법 선방한 편이다. 다만 저 세 밴드를 향한 절대적인 지지에 비해선 조용했던 감이 있다.] 활동하던 레이블이 다소 마이너인데다 해체-재결성 뒤 아예 인디로 전향해서 국내 정식 발매도 힘들다는 점도 작용한 듯하다. 2018년자로 드러머 마루야마 하루시게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식도]] 질환을 앓아오며 2015년자로 이미 음악 활동을 쉬어오게 되었고 비보 소식 이후로는 다이쿠하라 미키오라는 드러머를 영입하며 밴드 활동은 이어나가는 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